어릴 적이었죠.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반쯤이겠군요. 친구의 집에 놀러갔더랬죠. 그 친구 방엔 수십 아니 수백장의 CD와 LP로 가득찬 음반장이 컴퓨터 책상 옆에 전봇대처럼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며 서있었습니다. 음반장에 꽂혀있는 CD의 절반 이상은 팝가수 앨범이었죠.


부러움에 한장씩 한장씩 꺼내봤습니다. 친구는 새로 나온 앨범이라며 "복사해줄까"라고 물어봅니다. 으레 "그러면 고맙지"라고 답하지만, 내심 질투도 났더랬죠. 그 친구의 아이와 카세트, 음반장에 놓인 수백장의 CD, 심지어 LP까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학교에선 하루 종일 음악만 끼고 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머라이어 캐리에 푹 빠져있었고, 다른 한 명은 헤비메탈 밴드에 꽂혀있었죠. 그 틈에 끼려면 그 정도 음악은 들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들의 유창한 '음악 평론'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문화 불모지에서 10여년을 살아온 음악 문외한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열등감까지 갖게 됐달까요.


갑작스럽게 추억담을 꺼내놓은 건 다름이 아닙니다. 음악을 소비하는 속성, 즉 공유하는 문화 재화로서의 음악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분이 적지는 않을 듯합니다. 음악은 누군가의 identity를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공유의 대상이었습니다. 추천하는 음악을 녹음해서 친구에게 선물한다거나, 친구들에게 나의 취향과 identity를 드러내기 위해 혹은 과시하기 위해 음반장을 잘 정렬해놓는다거나. 이런 행위는 친숙하고 익숙한 행위였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자연스럽게 이런 추억은 옮겨오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음악을 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해서 표현하죠. "누구 음악이야"라는 질문을 친구에게 받는 순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귀여운 과시욕'인 것이죠. 


하지만 디바이스의 진화가 이러한 행위를 일부 위축시키게 됩니다. mp3를 mp3 플레이어에 담는 순간, 음악은 공유의 대상이 아니라 나만의 전유의 대상이 돼버립니다. 내가 듣는 음악을 빼내어 넘겨줄 수도 없고, 과시의 대상으로 전환시킬 수도 없어졌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mp3 파일 묶음을 메신저나 다른 경로를 통해 비합법적으로 공유하게 됩니다. 


온전한 공유의 재화가 디바이스의 한계로 인해 고립된 재화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이때부터 '음악은 혼자 듣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듯합니다. 친구로부터 추천 받을 길이 좁아드니 음원 사이트의 인기 차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음원 차트가 친구과의 음악 교류를 이어주는 매개가 돼버린 것이죠. 


그런데 인기 차트는 온통 아이돌로 넘쳐납니다. 음악 소비의 편식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획일화된 취향을 거부하는 이탈자들이 나타납니다. 92년 이전까지 음악 소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그들, 바로 20대 후반~40대들입니다. 


이들이 자신의 음악 identity를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중 한 가지가 바로 노래방입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뽑내기 위해 노래방에서 다른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신곡들, 혹은 추억의 노래들을 부르게 된 것이죠. 전체 음악산업에서 절반 가까운 매출이 노래방에서 발생합니다. 그 규모만 1조 3550억원 규모입니다. 참고로 2010년 기준으로 한국 음악산업의 규모는 2조9000억 시장입니다. 


이 지점에서 디지털 음악 플랫폼의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잠재된 음악 소비 방식, 즉 친구와의 공유, identity의 표현을 수용하고 진작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플랫폼으로 인해 관계의 확장이 발생할 것입니다. Spotify에 대한 전세계적 열광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muzrang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입니다. 음악으로 나를 드러내고 음악으로 친구와 대화하며, 그 과정 속에서 새롭게 음악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muzrang이 만들어가려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잊혀졌던 추억의 경험을 다시 되찾아주는 역할, 그것이 muzrang의 미션입니다. 

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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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3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LP를 모았는데, 아련하군요
    다만, 디바이스의 변화가 음악을 나만의 전유물로 만들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공유하게 만든다는 말씀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본문에서 말씀하셨듯이 테이프, LP 시절에도 "복사해줄까?라는 말을 서로 주고 받았고, 실제로도 공테이프에 불법적으로 공유를 하곤 했죠. 물론 기술이 발전해서 그 양이 비약적으로 늘긴 했지요
    오히려 그래서 음악은 예전이 더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나 합니다. 지금에야 (불법이지만) 누구에게나 바로바로 공유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으니까요. 지금 누가 자신만 가지고 있는 레어 음원파일이 있을까요? 오히려 예전에 아버지들의 방대한 LP 콜렉션이야말로 개인의 전유물이었죠.
    만약 현대에 와서 음악이 개인의 전유물이 됐다면,,,그건 디바이스의 변화보다 오히려 이어폰/헤드폰의 대중화, 즉 청취 방법의 변화가 더 설득력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